- 묵었던 옛터전을 새로 이루매 풍기는 먼지라도 향기로워라 http://kg63.or.kr/


2013년도 가을산책 후기
이름 : 조영갑(youngkabcho@hanmail.net)   작성일 : 13/10/03   조회수 : 769
동문여러분,

백제 바로 알기를 주제로 다녀 온 가을산책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나, 유례없는 결원으로 유사이래(?)

제일 적은 인원인 26명만이 참여한 것이 옥의 티였습니다. 장모님의 생신을 모르고 참석약속을 했다가 소환당하거나,

골프대회를 앞두고 연습하다 허리를 다친 경우, 시댁상을 당한  딸의 아이를 맡은 경우, 병원 검사일을 까 먹은 경우,

갑자기 신부님에게 포섭 당한 경우, 또 별 다른 내용 없이 집안일로 빠지게 된 경우등등 불과 이틀을 앞 두고 한꺼번에

터진 취소통보로 속수무책, 미리 참가비를 받지 않은 것을 후회도 해 봤으나, 이미 늦은 일이지요. 준비물중에서

아침식사용 떡은 전날 저녁에 준비하는 것이라 부랴부랴 일부를 취소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이제는 예산이 걱정인데,

아직은 우리 모임이 버림을 받지 않았는지 이우철동문이 고향을 방문하는 동문들을 식사대접하는 의미에서 50만원을

찬조하고,우리의 호프 류철호동문의 영향력 아래 망향휴게소와 죽전휴게소에서 귀빈대접을 받는 덕분에 잉여금은

유사이래(?) 최대였습니다. 특히 최상위 메뉴인  연잎밥정식은  적은 인원으로 인해 지출이 줄고,잉여금은 넘쳤으니

아이러니컬하지요. 하여튼 적은 인원 덕분인지 아주 정시에 출발하여 예정보다 일찍 망향휴게소에 도착하니, 망향휴게소

본부장의 진두지휘 아래 상차리기가 한창인데, 호두과자를 곁들인 커피를 즐긴 후 부소산성 향합니다. 안정현의 빈자리를

메꾼다고 특별히 준비한 오페라 아리아는 류철호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장송곡이라는 혹평을 받았는데, 자기 수준대로 품평을

한 방유현은 이내 잠들어 방대인의 수준이 어느 것인지 아리까리(?) 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부소산성에서 김진환동문이

특별히 주선한 이만식선생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 보다 한해 연배이신 이만식 선생은 백제 바로 알리기의 선봉장으로 백제에

관한한 많이도 공부하고 또 그 열정이 대단합니다.



무왕과 선화공주사이에 태어나 장자이면서도 계비의 박해 속에서 간신히 살아 남았던 의자왕은 즉위후 바로 전국을 돌며

화해와 소통으로 국내를 안정시키고, 밖으로는 당, 왜,고구려와 외교관계를 튼튼히 한 후 신라와 일전을 겨루게 되는데,

즉위후 15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통치할 정도로 해동증자라고 불릴 정도로 영민한 왕이었으나, 말년의 5년은 너무

자만했는지 방심하고 게을러 져서 결국에는 성충,흥수같은 충신들도 멀리하고,이 틈을 탄 신라의 적극적인 총력전에

무너지게 되는데, 마지막충신 계백은 황산벌 싸움에 5000명의 결사대로 신라군 50,000명을 상대로 4번이나 승리하고도

결국에는 장렬한 전사를 하지요. 신라와의 결전을 앞 두고 가족의 목을 베면서까지 결사대를 하나로 뭉치고자 했던

계백장군의 비장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소정방은 백제 유민 13,000여명을 포로로 하여 낙양으로 돌아 가지만, 신라는

백제의 모든 유물을 철저히 파괴합니다. 현재 백제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은 일본이 유일합니다. 패전국의 역사는 제대로

전해지지 못하지요. 남아 있다고 해도 승전국의 관점에 의한 것이라 상당 부분 왜곡되라라 생각 됩니다. 지금 이 시간 가장

확실한 교훈은 지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삼충사 앞에서 이만식선생의 해설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이윽고 삼충사를 나와 낙화암으로 향하는데, 약간 구름이 낀 하늘은 산책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씨였습니다.

이만식선생은 안내 도중 낙화암에 대하여 마치 의자왕이 황음의 극치에서 삼천궁녀와 함께 낙화암에서 떨어진 것처럼

폄하되는 것에 대하여 몹시 분개했는데,의자왕은 포로로 낙양으로 끌려 가 홧병으로 병사했고 중국 북망산에 묻혔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 당시 삼천의 의미는 많다는 뜻으로 쓰였으므로 (삼천 갑자 동방석등),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자결하기 위해 몸을 던진 것이다. 또한 낙화암이라는 이름도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몸을 던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붙여준 이름이라며 패전의 처참한 현실을 일부 관광객들이 취중에 비아냥거리로 삼아 희롱하는 것이 너무나

싫다는 이선생의 말이 가슴에 와 박혔습니다. 이어서 절벽을 따라 내려간 곳에 고란사가 자리 잡고 있는데, 고란사는

고려시절에 낙화암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절로서, 지금은 아주 드물게 자생하는 고란초를 띄운

약수가 유명하답니다. 황포돗배 (말이 황포돗배이지 그야말로 거시기한(?) 황포를 걸친)를 타고 부소산성을 한번 둘러 보며

구드래나루로 향하는데, 한때 한반도에서 융성했던 백제의 수도에서 둘러 볼 것으로는 조금은 초라한 것이 마음이 짠합니다.



백제시대 정원이었던 궁남지는 5,6월이면 연꽃이 만발하여 아주 장관인데, 가을이라 시간관계상 생략하고, 대신 연잎밥으로

점심식사를 준비합니다. 애초에는 부소산성앞에 위치한  "백제의집"으로 정했으나, 김진환동문이 추천한 보다  격조 높은

전문식당  "백제향" 으로 바꾸고, 이우철동문이 찬조하는 바람에 최상위메뉴로 점심식사를 마칩니다. 우리 산책 단가로는

조금 세지만,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이윽고 정림사지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 곳에는 국보제9호인 5층석탑이 있습니다. 처음 발견시에는 탑신에 새겨진

"대당평백제국비명"이라는 글자로 인하여 평제탑으로 알려 졌던 비운의 탑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으로서 그 때까지

건립 되었던 목탑을 석탑으로 건립하면서  여러가지 신 기술을 적용한 것입니다. 탑의 기초나, 층간의 높이 비례, 처마의 형상,

149개 돌의 꿰맞춤등 너무나 정교한 기술들은 당시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대변하는데, 건립한지 14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웅변하고 있지요. 일본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하면 할 말을 잇지 못합니다.왜냐하면 그들의

문화의 근원을 발견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전쟁후 백제 유물을 철저하게 파괴하였던 신라가 왜 이 탑은 그대로 두었을 까요?  

그것은 소정방의 전승을 기념하는 비문 때문일 것입니다. 승리에 도취해서 방자하게 새겨 놓은 낙서가 오히려 그 탑을

보존하게 되는 아이러니죠. 하여튼 이 탑으로 인하여 이곳이 정림사지 였다는 것이 밝혀 졌으나, 그 정림사라는 것도

고려시대 사찰의 깨어진 기와장에 새겨졌던 이름이라니, 철저하게 잊혀진 패전국 백제의 문화이지요.



잠시 가라앉은 기분을 추연청이 인도하는 기공으로 풀고 백제문화단지로 향하는데,웬지 몸이 가벼워진 (?) 느낌이네요.

나이 들수록 과격한 운동 보다는 정중동의 단련이 그럴싸 해 보여 추동문이 선물한 수련책과 CD를 참고하여 앞으로 시도해

볼 만합니다. 혹 필요하신 분들이 있으면 추동문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백제문화단지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철저하게 파괴된 백제문화인 만큼 일반인들에게 알릴 수 있는 것이 없어,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것입니다. 왕궁(사비궁), 부속사찰(능사), 생활문화마을등 문헌을 기초로 재현했으나

이 문헌마저도 제대로 기록된 것은 없어 다른곳에 언급된 내용을 참조한 것이 많답니다. 일례로 왕궁 부속사찰인

능사는 오늘에 와서 명명한 것이고, 부여읍 능산리에서 발굴된 유구의 규모와 똑 같이 건립하였는데, 이것은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백제왕실 사찰로 중문-탑-금당-강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된 백제의 대표적인 가람양식이랍니다.  

백제문화단지 안에 있는 사비궁은 능사와 비슷한 규모인데, 이만식선생의 설명으로는 일반적으로 왕궁에 부속된

사찰은 왕궁 보다는 작은 것이  당연한 만큼 그 당시는  지금 재현해 놓은 왕궁보다는 훨씬 컸을 것이니, 고구려,백제,

신라중에서 유일하게 황제를 칭한 백제의 위상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강대하고,규모가 크지 않았을까?  

백제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한강유역, 웅진, 공주,부여의 유적찾기에 힘쓰는 것과  아울러, 백제가 해외 (중국 요서지방)

진출도 한 것이 문헌에 있는 만큼, 중국의 유적을 부지런히 찾아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만식 선생을

뒤로 하고 서울로 향합니다.  지면 안되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예정 보다 이른 18시에 죽전휴게소에서 역시 소장 진두지휘하에 잘 차려진 우동정식을 대접 받고, 커피도 한잔 마신 후

양재동으로 향합니다.  이번 여행에 함께해 주신 동문여러분, 또 남미출장으로 함께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이만식선생을

주선하는등 많은 도움을 준 김진환동문, 특별히 고향방문하는 동문들에게 식사대접을 해 주신 이우철동문,

고속도로에서는 최고의 대접을 하는 영원한 영향력의 지존 류철호 동문,

저와 함께 사전답사로 수고하신 김숭,유재인,이한식동문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경기고등학교 제63회 동창회장




2013년 가을 산책

  
일 시 : 2013년 10월 2일(수)

장 소 : 부여(백제 바로 알기)

비 용 : 일인당 3만원

일 정 : 08:30 - 11:00  양재동 행정법원앞 출발 (죽전 버스정류장  경유)

                              망향휴게소(커피 제공), 부소산성 도착

           11:00 - 13:00  부소산성 산책( 삼충사, 고란사, 낙화암, 황포돗배)

                              구드래 나루 도착

           13:00 - 13:40   점심식사 (백제향 041-837-0110)

           13:40 - 16:30   백제 바로 알기(이만식선생 특별 해설)

                               정림사지, 기공 체험(추연청 인도), 백제 문화단지

           16:30 - 18:00   죽전휴게소 도착

           18:00 - 18:40   저녁식사(우동)

           18:40 - 19:30   양재동 도착, 해산  

  
비 용 : 수입: 1,250,000원

                  회비(30,000*25=750,000), 이우철 찬조(500,000)

          지출: 814,500원

                  아침,간식,음료(222,000), 부소산성 입장료(6,000),

                  황포돛배(104,000), 연잎밥정식(466,000), 정림사지(4,500),

                  백제문화단지(12,000)

          잔고: 435,500원(동창회 기금으로 이체)

  
참가자: 김성규/최미영, 김영창/우원주, 류철호, 박봉수, 박현도, 박홍성,

           방유현, 서정규, 신동철, 윤재철, 이광택, 이범순, 이한식/유희영,

           임승빈/황승희, 전인백, 조영갑/양영실, 조중연, 최동규, 최형근,

           추연청, 한태규 (26명)

  
비 고 : 1. 류철호동문의 주선으로 망향휴게소에서 커피와 호두과자를,

              죽전휴게소에서 저녁식사(우동)를 대접 받다.

         2. 추연청동문의 인도로 정림사지에서 기공체험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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